여러분, ‘조운선’이라고 들어보셨나요? 고려시대부터 조선시대까지 세금을 운반했던 배인데요. 오늘 세정스케치에서는 고려시대부터 조선시대 국가재정 확보에 중요한 역할을 했던 세곡운반선, 조운선에 대해 알아봅니다. 화폐가 아닌 현물로 세금을 거둬들이던 조선시대. 전국 각지에서 거둔 쌀과 곡물 등을 중앙의 경창으로 보내기 위해서는 특별한 운송책이 필요했는데요. 고려시대부터 조선시대 세곡 운반을 책임졌던 ’조운선‘의 흥미진진한 세금 운반 이야기를 지금부터 만나봅니다. 고려시대부터 조선시대 국가에 수납하는 쌀과 곡물 등을 지방의 창고에서 한양의 세곡 저장 창고로 운반하는 데 사용했던 선박, 조운선. 조운선에 대한 기록은 1863년, 함열현감 겸 성당창 조세 운반 담당관으로 임명된 임교진이 세금으로 거둬들인 세곡을 조운선에 실어 전라도에서 한양까지 운반한 과정을 기록한 항해일지인 조행일록을 통해서도 살펴볼 수 있는데요. 특히, 기록에 따르면 조운선은 1461년, 세조 7년 좌의정을 지냈던 신숙주가 배에 격판을 설치해 물건을 실어 나르는 선박도 되고, 전쟁에 필요한 전투선으로 활용할 수 있도록 하자는 의견에 따라 전투선으로도 사용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따라서 임진왜란 때 전쟁에서 활약했던 판옥선의 구조와 대동소이한 형태로 추정되고 있습니다. 이렇게 기록 속에서 살펴볼 수 있었던 조운선을 21세기 다시금 마주하게 됐는데요. 지난 2014년, 충남 태안군 마도해역에서 발견된 침몰한 한 척의 목선이 바로, 조선시대 조운선이었습니다. 마도해역은 고려시대부터 조선시대에 이르기까지 조운의 주요한 항로였는데요. 하지만, 빠른 물살과 곳곳에 있는 암초 때문에 항해가 어려워 ‘난행량’이라고도 불렸을 정도로 험난한 항로였습니다. 그만큼 해난사고 또한 빈번하게 발생했는데요. 조선시대 마도해역에서 선박이 난파되었다는 기록을 심심치 않게 찾아볼 수 있습니다.선박이 발견된 당시 선체 내부에는 백자와 분청사기를 비롯해 다량의 곡물 등이 실려 있었는데요. 이로써 각 지방에서 조세로 거둔 곡식과 공물을 중앙으로 운반했던 조운선의 가능성이 제기됐습니다. 태안 마도해역에서 4번째로 출수된 배라서 붙여진 이름 마도4호선. 지금까지 태안 마도해역에서 출수된 마도1, 2, 3호선은 고려시대 선박으로 조운선일 것이라는 추정만 했지 실제로 조운선임을 입증할 만한 자료는 명확하지 않았는데요. 하지만 마도 4호선은 달랐습니다. 마도 4호선이 조선시대 조운선임을 입증할 수 있는 자료.바로, 선체에서 발견된 분청사기에 새겨진 ‘내섬’이라는 글자입니다. ‘내섬’은 조선시대 궁궐에 바치는 토산물 등의 물품을 관리하던 관청을 의미하는 ‘내섬시’를 의미하는 글자로, 관청의 명칭을 표기하도록 한 태종과 세종 시대 사이에 제작된 것으로 추정되고 있는데요. 또한, 선박 내부에서 발견된 목간 또한 마도 4호선이 조선시대 조운선이라는 것을 증명하고 있습니다. 목간에 적힌 ‘나주광흥창[羅(亽)州廣興倉]’.이는 배의 출발지와 도착지를 살펴볼 수 있는 문구로 전라남도 나주에서 출발해 서울의 광흥창으로 운송될 세곡이었음을 알려주고 있는데요. 여기서, 광흥창은 조선시대 관리의 녹봉을 관리하던 기관으로, 마도 4호선은 광흥창이라는 국가기관으로 보내는 공물을 적재했다는 점에서 공식적으로 국가에서 운영한 조선시대 조운선임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고려시대부터 조선시대까지 국가 재정 확보에 중요한 역할을 담당했던 세곡운반선, 조운선. 조운선을 통한 역사 속 세금 항해는 오늘도 다시 힘차게 출발합니다.